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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

복지사 1급 및 복지학과, 교육 등 교육사회학 요점 정리 6. 근현대 한국교육제도의 변화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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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근현대 한국교육제도의 변화와 특징



6.1 한국교육의 역사적 변천과정

1. 근대 이전의 교육
● 전통사회에서의 우리 교육은 서구사회보다 상대적으로 발달되었음. 교육을 통해서 관료를 양성하고, 과거를 통하여 인재를 선발하였으며, 이들에게 국가 정치를 맡김으로써 문민정치가 가능하도록 하였음. 다만 교육기회가 양반에게 국한되었다는 점은 서구의 경험과 다를 바 없음
● 우리나라에 서구의 근대교육이 전파되기 전에 존재했던 제도교육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성균관과 4부학당, 서원, 서당 등에서 유학의 경전을 위주로 교육을 실시
2. 근대교육의 전개
●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조선왕조는 근대화의 불가피성에 직면하게 되고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교육에도 근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 근대교육의 시초에 대한 몇 가지 주장 검토
(1) 배재학당설
● 1885년 8월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H. G. 아펜젤러가 설립. 고종은 1886년 6월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 이름을 지어 간판을 써 줌.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이라는 학당훈(訓)은 ‘크게 되려는 사람은 마땅히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를 의미. 과거 교육의 목적이 개인의 영달이나 가문의 명예만을 지향했었다는 점과 비교할 때 매우 획기적인 것이라고 주장
● 배재학당의 특성: 구교육과 구별되는 ‘근대적 교육방식’
㉠ 학년을 두 학기로 나눔
㉡ 하루의 일과를 시간을 정하여 진행시킴
㉢ 입학과 퇴학의 절차를 엄격히 규정함
㉣ 수업료를 옛날의 물품 대신 돈으로 받음
㉤ 성적표를 만들어 부형이나 보호자에게 직접 보냄
㉥ 근로 장려
● 다만 이 학교는 종교적인 목적을 우선시하였으며, 근대적인 교육사상에 기초한 보편적인 교육이 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의 근대교육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은 사실
(2) 원산학사설
● 1883년 개항장 원산의 지역주민들이 외국의 도전과 새로운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덕원부 원산에 설립하였다고 함. 신지식을 교육하여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외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 설립 초기에는 학교를 문예반과 무예반(武藝班)으로 편성
● 원산학사는 주민과 개화된 지방행정관료의 합작품. 전통적 교육기관인 서당을 근대화시킨 것. 자생적 근대교육기관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음
● 그러나 원산학사 역시 그 당시 남아 있던 과거제도 준비기관이었으며, 교육내용 역시 근대적 학문을 다루지 않고 전통적인 유교경전에 치우쳤던 점, 그리고 이러한 제도가 연속적이지 않고 단일 학교 설립으로 그친 점 등을 들어 최초의 근대학교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반론이 있음
(3) 개량서당설
● 조선 후기에 와서 유랑 지식인층 증가. 사회비판의식 고취. 실제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사회비판의식을 기르는 개량서당 등장. 교육의 주체적 안목 형성에도 매우 중요한 주장
● 이 주장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전개되는 서당교육의 변모에 대한 체계적인 증거수집과 자료확보가 필요
(4) 식민지교육설
● 식민지배의 시작과 동시에 일제는 조선의 지배를 위해 가장 먼저 교육제도 정비 시작. 1908년 ‘사립학교령’을 공표, 1911년 ‘조선교육령’ 제정.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구식 학제를 근간으로 하는 학교교육제도가 형성
● 이러한 주장은 ‘근대교육 = 식민교육’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등식을 전제하고 있으며, 교육의 주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무리가 따른다고 볼 수 있음
3. 식민지기의 교육
●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과 동시에 일제는 한국의 민족교육세력을 탄압하고 말살하는 한편, 모든 학교를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소수의 사립학교에 대하여도 철저한 통제를 가함. ‘일본인화’ 교육을 위해 학교제도를 이용. 1908년 ‘사립학교령’으로부터 1911년 ‘조선교육령’, 1918년 ‘서당규칙’ 등을 만들어 식민지배를 위한 교육체제 강화
● 일제 강점 기간 동안 일본의 학제가 이식되어 6-4-5제의 교육제도를 갖춤. 인문교육보다는 실업교육에 치중. 초등교육은 한국인을 일본인에 동화시키는 데 중점. 중등교육은 일본인이 다니는 중학교와 구분되어 5년제 고등보통학교나 기술학교에서 소수의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 고등교육은 철저히 통제
● 식민지 중반인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한국 학생들의 초등학교 진학 급증.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 가능. ‘실력양성론’(實力養成論) 대두, 학교를 나와야 출세할 수 있다는 일제의 교육정책 관철, 아울러 지배의 장기화로 인한 체제 순응 등
4. 해방 이후의 학교교육
● 해방과 동시에 민족의 분단 시작. 분단 후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고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하여 군정 실시. 군정 기간 동안 양쪽이 독자적인 교육이념과 제도를 구축하는 데 왜곡이 가해지기 시작
● 해방 후 3년간의 미 군정기 동안 교육제도, 교육이념, 교육정책 등을 미국이 주도함. 예컨대 미국의 교육사절단 내한, 교육자들의 미국 파견 연수 및 미국 유학 주선 등. 미국식의 교육철학과 교육체제 이식. 외래문화 지향적 교육이 지배적인 것이 되었으며 민족교육, 주체성 교육은 경시
● 1949년 제정·공포된 교육법은 학교중심의 공교육제도의 확립을 명백히 하고 있음. 1950년 초등 의무교육 실시 시작, 문맹퇴치를 위한 공민학교 설립 등의 내용도 담고 있었으나 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무산 
● 1950년 한국전쟁은 국민교육의 기초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을 재건하려는 노력은 전란 중에도 계속
● 1954~59년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 추진. 문맹퇴치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전개
● 1960년 이후 국가개발 열기를 배경으로 교육에 대한 국가의 계획적인 통제가 강화. 국가발전에 교육이 이바지해야 한다는 발전교육론(發展敎育論)에 대한 주장이 강하게 제시
● 1960년대 후반부터는 중등교육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 높은 진학률로 인해 1969년 중학교 무시험제도 채택, 1974년부터는 고등학교 평준화 실시
● 1970년대에는 유신체제의 시작과 함께 교육에 대한 국가의 이념적 통제가 매우 강화되었으며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더욱 강조 
● 1980년대에 와서 교육개혁의 중점은 대학교육으로 이행. 1979년에 발표된 ‘7·30교육조치’를 통해서 과외공부가 금지되고, 본고사 폐지, 졸업정원제 도입 등이 추진. 대학교육의 기회가 급속히 팽창
● 1990년대에는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교육개혁 가속화. 시장경제의 원리가 학교교육에도 도입되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주창. 1995년 발표되었던 ‘5·31교육개혁안’은 이러한 교육정책 변화의 방향을 담고 있었음


6.2 학교교육의 확대와 학력상승

● 1930년대부터 초등교육 확대 시작.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보편화 단계. 중등교육의 확대는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 대학교육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팽창. 이러한 팽창은 식민지배 기간 동안의 억압된 교육욕구,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의 영향으로부터 비롯
● 학생 수의 급증은 수많은 문제점을 낳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 시 엄격한 경쟁시험을 통과하도록 함. 소수정예만을 위한 교육인 엘리트주의(elitism) 표방. 그러나 대중화단계에서의 엄격한 선발은 각종 문제를 낳음. 이른바 ‘무즙파동’, ‘창칼파동’ 등이 발생. 69년, 74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 폐지로 대중적 중등교육체제로 개편 
● 학교 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사립학교 설립 활성화 정책 추진. 그 결과 우리나라 공교육 체제 내에 있는 사립학교의 비중이 과다하게 높음 
● 또 하나의 해법은 교육재정문제의 ‘수익자부담원칙’. 교육에 드는 경비를 그 혜택을 받는 학생, 학부모가 책임지도록 한다는 원칙. 즉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팽창은 유상제에 의해 가능. 사학진흥과 수익자부담정책은 정부가 재정적 지출 없이 사적인 영역에 공교육을 맡김으로써 교육적 욕구를 공교육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됨 


주관식 문제

1. 우리나라 근대 이전의 교육제도, 교육내용,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논의해 봅시다.
2. 근대교육의 시작을 설명하는 몇 가지 관점을 비교해 보시오.
3. 교육인구 팽창과 높은 교육열을 공교육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원칙과 정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설명해 보시오.

정답

1. 우리나라의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서구사회와 달리 제도교육이 매우 발달한 형태로 유지되었다. 고려, 조선시대의 학교제도는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초등, 중등, 고등교육의 단계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성균관과 4부학당, 서원, 서당 등은 서구보다는 훨씬 발달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들 교육기관에서 다루었던 내용은 유학의 경전 위주였다. 또한 교육을 통해서 관료를 양성하고 과거를 통하여 인재를 선발하였으며, 이들에게 국가정치를 맡김으로써 문민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이 학교들이 수행하였다. 다만 교육기회가 양반에게 국한되었다는 점은 서구의 경험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2. 근대교육의 시초에 대한 몇 가지 주장(說)이 있다. 배재학당설은 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하고 고종의 인가를 받았으며, 봉사를 강조하는 학당훈의 학교제도가 정비된 최초의 근대식 학교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산학사설은 1883년 개항장 원산의 지역주민들이 외국의 도전과 새로운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덕원부 원산에 설립된 원산학사가 최초의 근대식 학교라는 주장이다. 개량서당설은 조선 후기의 개량서당이 근대교육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었다는 점을 담고 있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식민지교육을 통해서 본격적인 근대교육제도와 시설 및 법령이 정비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식민지교육설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을 통해서 볼 때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에 자생적인 학교, 외부로부터 설립된 학교 및 식민지 시기의 학교 등장 등이 근대교육의 출발을 함께 한 요인이라 평가할 수 있다. 주체적이며 전통의 계승을 강조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법적, 제도적 정비까지 중요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3. 교육인구 팽창과 높은 교육을 공교육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원칙과 정책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학교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사립학교 설립을 활성화시켰다. 또한 교육재정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익자부담원칙’을 통해 중등교육을 팽창시킬 수 있었다. 즉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팽창은 국가의 직접적인 재정 투자로 가능한 부분보다는 유상제와 사학진흥을 통해 정부의 재정 지출 없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 사립학교의 비중이 매우 높으며, 공교육의 공공성에 상당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사부담 공교육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 역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과감한 국가재정 투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객관식 문제

1. 배재학당의 학당훈이었던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은 무엇을 강조하는 것인가?
① 사회봉사 ② 가문의 영광
③ 입신양명 ④ 유교적 전통

해설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여러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회봉사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2. 원산학사의 특징과 거리가 먼 것은?
① 문예반과 무예반으로 구성
② 개항장 원산에서 신지식 교육
③ 정부 주도의 공교육 기관
④ 과거제도 준비 기능 여전히 잔존

해설
  원산학사는 관·민이 협력하여 개교한 학교이다.
3. 우리나라 교육인구 팽창으로 인한 특징을 잘 설명한 것은?
① 1930년대부터 초등교육이 팽창하기 시작
② 1950년대에 고등교육 팽창 시작
③ 1970년대 초에 고등교육 보편화 단계
④ 대중주의에서 엘리트주의로의 변화

해설
  일제시대인 1930년대부터 초등학교가 급증하였고, 이를 당시 언론에서 “교육열”로 표현한 바 있다.
4. ‘무즙파동’, ‘창칼파동’은 다음 중 어떤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① 고등학교 평준화정책 ② 대학 졸업정원제
③ 초등학교 의무교육 ④ 중학교 무시험진학

해설
  1969년 중학교 무시험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이 두 사건은 이러한 제도변화를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동했었다.
5. 1995년 발표되었던 ‘5·31교육개혁안’에 대한 설명과 거리가 먼 것은?
①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② 자율과 경쟁을 통한 교육기반 구축
③ 교육복지정책 확산
④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

해설
  5·31 교육개혁안은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정답

1. ① 2. ③ 3. ① 4. ④ 5.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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