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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정리

한국사능력검정, 9급 공무원, 각종 한국사 시험 대비 한국사의 이해 핵심요점 요약 정리 13. 대공황과 전시체제, 민족해방운동과 사회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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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대공황과 전시체제, 민족해방운동과 사회 변화

 

13.1. 세계 공황과 일제의 지배정책

1. 세계 공황과 침략전쟁(교재 299)

(1) 1929년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경제공황이 시작됨

(2) 공황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일본은 1931년 만주 침략을 계기로 불황을 이겨내려 함

(3)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침략전쟁을 계획한 일본은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을 일으킴

 

2. 농촌진흥운동과 공업화정책(교재 299~301)

1) 농촌진흥운동 : 자급자족의 원칙, 농민이 가난한 까닭은 게으르고 무식하기 때문이라며 자력강생을 다그침

2) 조선공업화 정책 : 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일본 독점 자본은 시멘트, 비료, 화학 등 중화학공업과 만주 시장을 노리는 제사, 방직업 분야로 진출함

 

3. 억압기구 강화와 사상 통제(교재 301)

(1) 경찰력과 군사력 강화 : 경찰 1개 사단 추가 증가, 군사는 23만 명이 조선에 주둔함

(2) 경찰 임무 보조를 위해 관변 청년단체, 자경단, 경방단, 방공단, 재향군인회 등의 단체를 이용함

(3) 경무관제도 실시(1930년대) : 경무관이 사상운동 탄압을 전문으로 맡음

(4)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 12.),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1941) :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뿐만 아니라 의심이 가는 사람을 마음대로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예방구금소에 강제 수용함

 

13.2. ‘공황기민족해방운동의 재편

1.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교재 302~303)

1) 12월 테제 : 코민테른(3인터내셔널)은 태제에서 조선공산당을 코민테른 지부로 승인한 것을 취소함

2)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혁명적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의 결성(1931~1932) - 일제의 탄압으로 무너짐

 

2. 저항하는 민중(교재 303~304)

1)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조직적인 파업에서 시작하여 경제투쟁, 정치투쟁으로 발전함(을밀대 노동자 강주룡 등이 대표적임)

2) 혁명적 농민조합운동 : 소작료 인하, 공과금 납부 거부, 군수용 물자 강제수매 반대, 부역동원 반대운동 등을 함

 

3. 개량적 활동(교재 305)

(1) 천도교 신파(최린 등) : 농촌계몽, 생활 개선, 소비조합 운동

(2) 기독교 단체(YMCA ) : 농사강습회나 야간강습회을 열어 농사기술 개량, 생활 개선, 부업 장려

(3) 언론기관 : 한글보급운동(󰡔조선일보󰡕), 브나로드 운동(󰡔동아일보󰡕, ‘민중 속으로라는 뜻)

 

13.3. 중일전쟁 뒤 일제 지배정책과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모색

1. 황국신민화정책과 강제 동원(교재 305~307)

1) 황국신민화정책 강화 : 1930년대

(1) 내선융화, 내선일체 강조 : 조선인과 일본인은 형태도 마음도 피도 살도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

(2) 황국신민서사 암송 : 충성 맹세문 - 조선인들에게 외우게 했음

(3) 신사참배 : 전국의 모든 읍·면에 천황 족속의 귀신을 모시는 신사를 만들어 강제로 참배시킴

(4) 창씨개명 : 일선동조론(일본 조상과 조선 조상은 같다는 이론)으로 성씨를 바꾸도록 강요함

(5) 조선어 말살정책 : 학교에서 조선어 시간을 차츰 줄여 나가다가 1941년 아예 없앰

(6) ‘황국신민학교(국민학교)’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바꾸고 황민으로 길들이는 교과 편성

(7) 연성소 조직 : 주로 공장과 광산에 만든 것으로, 군대식 노동 규율을 되풀이하여 노동을 통제함

2) 전시동원체제 확립

(1) 국가총동원법 : 19385월 조선에 적용함

(2) 육군특별지원병제 : 1938년 전쟁 인력 채우기 위한 것

(3) 학도지원병제 : 1943, 전문학교 이상 학생들을 우선 전쟁터로 강제 동원함

(4) 징병제 실시 : 1944, 일제가 항복할 때까지 20만 명 남짓한 청년들이 총알받이로 내몰림

(5) 국민징용령 : 1939, 부족한 노동력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 징용, 1백만 명이 훨씬 넘음

(6) 일본군 위안부 동원 : 일본 본토, 조선, 타이완, 그 밖의 여러 점령지 여성이 대상이 됨

(7) 자원수탈 : 지하자원 약탈, 위문품 모집, 국방헌금 강요, 고철·동 제품의 찬탈, 국민학생까지도 근로동원으로 군사 시설 공사장으로 끌어냄

(8) 쌀 증산계획, 공출제도 등으로 공동작업반을 만들어 여성과 어린 학생까지 강제 동원하여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간 남성 노동력을 메움

 

2. 쉼 없는 국내 민족해방운동(교재 308)

(1) 조선학운동 :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벌인 운동이었으나 조선어학회 사건을 끝으로 은신함

(2) 경성콤그룹 결성 : 이재유 그룹에서 활동했던 자들이 박헌영을 지도자로 받아들여 그룹 결성

(3) 원산그룹 : 원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4) 건국동맹

19448,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만든 반일 조직

민족해방이 가까이 왔다고 확신하고 나라 안팎의 민족해방운동 세력과 힘을 합치려고 함

공산주의자협의회와 함께 군사위원회를 만들어 연안의 독립동맹과도 연계하려고 함

건국동맹은 해방 뒤 건국준비위원회를 세우는 밑거름이 됨

 

13.4. 1930년대 무장독립전쟁

1.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교재 310)

(1) 한국독립군(지청천)과 조선혁명군(양세봉)은 중국인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함

(2) 한국독립군은 1933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 지청천은 한국광복군 창설의 주역이 됨

(3) 조선혁명군의 양세봉이 일제의 밀정의 함정에 빠져 살해된 뒤 조선혁명군의 역량은 크게 줄어듦

 

2. 동북항일연군과 조국광복회(교재 311)

(1) 만주에 남아있는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 독립군이 1936년에 조국광복회 결성

(2) 1937년 함경남도 갑산의 보천보로 들어와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공격함(보천보 전투)

(4) 일제는 조국광복회 조직을 샅샅이 찾아내어 수많은 사람을 검거하여(혜산 사건, 동계 대토벌) 남아 있던 항일 유격대는 소련 영토로 이동함

 

3. 조선의용대(교재 312)

(1) 1935, 중국 내의 여러 단체가 뭉쳐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함 :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임정 고수파는 참여하지 않음

(2) 중일전쟁 이후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1938년에 무장 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조직함

(3) 조선의용대(김원봉)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정치 선전, 정보 수집과 포로 심문, 후방 교란 등의 활동을 주로 함

(4) 1941년 무렵 화북 지역으로 올라가, 1942년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공산당의 팔로군과 함께 활동함

 

4. 충칭 임시 정부와 한국광복군(교재 312~313)

1) 한국독립당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1) 1940, 민족주의 계열의 한국국민당(김구)과 조소앙과 지청천이 이끌던 정당 등 3개 정당이 통합하여 한국독립당을 결성함

(2) 한국독립당은 김구가 중심이 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집권 정당의 성격을 띠고, 1941년 일제가 패망할 것에 대비하여 건국강령을 발표함

(3) 건국강령 : 새로운 민주주의 확립과 사회 계급을 타파하며 경제적 균등주의를 실현한다는 내용

(4) 조선의용대의 일부인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여 중국 관내 독립운동단체가 통일됨(1942)

2) 충칭 임시 정부와 한국광복군

(1)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충칭에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광복군 창설(1940)

(2) 총사령관에는 지청천이 취임하였으나 중국 정부와 맺은 군사협정 때문에 독자적인 작전이 어려웠음

(3) 머지않아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한국광복군은 중국에 파견되어 있던 미국전략정보처(OSS)와 협약하여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패망하여 실행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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