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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이해

한능검, 공무원, 한국사 시험 대비 한국사의 이해 핵심요약정리 XI. 대한제국의 좌절과 일제의 한국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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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 대한제국의 좌절과 일제의 한국 강점

1. 대한제국의 수립과 근대국가 건설의 좌절

1) 러일 세력 균형과 열강의 이권침탈
-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일/영/미 반발
- 러일간 로젠-니시협정(1898)
- 고종은 중립외교를 통해 독립을 유지하고자 함
- 열강의 이권침탈 :
미 - 운산금광 개발권, 철도, 전기, 전차, 수도
러 - 광산개발권, 산림채벌권
일 - 대륙진출 발판마련을 위한 철도 부설권(경부/경인)

2) 대한제국과 광무개혁
- 고종은 대한제국(大韓帝國) 선포(1897), 연호 광무, 황제중심의 근대국민국가를 지향
- ★광무개혁 :
구본신참을 원칙으로 점진적/주체적/중립적 근대화정책
자주성과 황제친위세력 지지를 위해 군대육성 - 육군증설, 해군제 도입(1898), 육군무관학교(1899), 원수부 설치, 징병제 공포(1903)
궁내부 - 근대화 사업 추진기구화
내장원 - 광산/홍삼/철도 장악, 근대화폐제도, 중앙은행 설립
기예학교, 의학교, 상공학교, 외국어학교 설립
순회재판소, 전보사, 국립병원 광혜원
양전지계사업 : 근대적 토지소유권 확립/조세수입 증가를 목적, 토지의 2/3 토지조사/지계발급, 지주/부농에게 유리
민간 - 한성은행, 대한천일은행 설립
- 민중의 요구와 동떨어진 개혁, 자유시장 발전 저해, 개혁자금마련을 위한 차관교섭을 일본이 방해

3)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 독립협회(1896) :
사대관계 청산을 기념, 독립문 건설/독립공원 조성을 위한 보수/개화파 민관합동기구
회장 윤치호, 정치/계몽단체로 변화
- 만민공동회 :
독립협회가 시작한 반정부 운동 주최
반관반민의 의회설치 주장, 관민공동회를 통해 입헌군주제를 지향한 헌의6조 고종에게 제출
공화제를 실시하려한다는 모함으로 해체
- 서구식 근대화, 입헌군주제와 의회를 두는 부르주아적 정치 개혁, 열강의 이권침탈 묵인, 자주국방의 중요성 부인, 민중은 계몽과 동원의 대상으로만 여김

4) 민중의 반침략 항쟁과 활빈당
- 전국적 항조운동(抗租運動,지주에게 대항)/항세운동(抗稅運動)(1898)
- 제주 이재수의 난(1901) - 프랑스선교사의 강압적 선교/황실수탈/일본어선 침략에 항의
- 활빈당 투쟁(1900) :
반봉건/반침략 민중항쟁
대한사민논설 13조 천명 - 토지 균등분배, 방곡령 실시, 경제이권침탈 반대

2. 을사조약에서 강제합병까지

1) 러일전쟁
- 러시아 만주 점령(1901)/만주폐쇄(1903)로 일/영/미 반발
- 1차 영일동맹(1902)
- 영/미 지원을 약속받은 일본은 러시아 공격, 러일전쟁(1904)
- 일본은 한국에 일본군 5만명 주둔, 한일의정서(전국 어디서든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강제 체결
- 1차 한일협약 강제 체결, 고문정치
- 일본은 러시아 발틱함대 격파(1905)
- 일미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 2차 영일동맹으로 한국의 보호국화 국제적으로 승인(1905)
- 일러 포츠머스조약(1905), 러일전쟁 종료

2) 을사조약
- 일본 이토 히로부미 한국 특사로 파견
- 을사오적(이완용/이근택/권중현/박제순/이지용)을 내세워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 강제체결(1905)
- 서울시민의 반발, 장지연 황성신문 ‘이 날을 목놓아 우노라(시일야방성대곡)’, 상소와 자결
- 고종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위종/이상설 특사 파견하였으나 일본이 방해
- 전명운/장인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 고문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단(1908)

3) 통감부 설치와 일제의 국권침탈
-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통감부 설치(1906) : 식민지 체계 수립
- 고종 폐위(1907), 정미조약(3차 한일협약) 강제 체결 - 법률제정/행정처분/고위관리 임명 등 내정 장악
- 독도를 일본 시마네현에 귀속(1905), 안봉선 철도 부설권을 댓가로 청과 간도협약(국경 백두산-석을수-도문강,1909)
- 재정정리사업 : 호구조사 실시, 세금징수 호수 증가, 토지 기초조사, 갖가지 명목의 세금 징수
- 화폐정리사업 : 한국의 화폐/금융체계를 일본에 예속
- 토지약탈 : 황무지개간에 관한 규정, 국유미간지 이용법, 토지가옥증명규칙 등 각종 악법, 황실소유 역둔토/궁반전 국유화(1908)
- 철도, 항만, 도로 등 교통 운수체계 장악, 신작로 건설

4)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
- 일본 각의에서 한국병합에 대한 방침결정(1909)
- 3대 통감 데라우치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의 비밀협상으로 일제의 병합에 합의
- (한국 황제가 일본 황제에게 병합을 청구하는 식의) 병합늑약 체결(경술국치,1910), 식민지화

3. 국권회복운동과 의병전쟁

1) 문화계몽운동에서 신민회까지
- 문화계몽운동 : 당장의 독립보다 문명화/실력양성의 필요성 주장
- 계몽운동단체 :
보안회(1904) - 일제의 토지약탈계획 무산
헌정연구회(1905) - 입헌정치 실현을 목적
대한자강회(1906) - 교육개발과 식산흥업을 목적
대한협회(1907) - 친일
- 교육 : 서북학회, 기호학회, 사립학교 건립
- 언론/출판 :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 잡지 소년, 동국사략/대한신지지/국어문법/을지문덕전/이순신전
- 국채보상운동(1907) : 대구 광문사,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지도자 양기탁 구속후 중단
- 계몽운동의 한계 : 사회진화론 찬성, 일본의 침략을 문명의 시혜로 착각, 의병 비난
- 신민회(1907) :
교육과 실력증진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평양 대성학교/자기회사/태극서관 설립
안창호의 실력양성론 거부하고 독립전쟁론 채택
일본이 105인사건을 조작하면서 조직이 발각, 해체

2) 의병 봉기
- 활빈당의 주요 활동지(1905), 재야유생, 정산 민종식(1906), 태인 최익현(1906), 신돌석(태백산을 나는 호랑이), 정순현
- 평민출신 의병장, 여러 계층의 참여, 지역 주민의 적극 지원
- 군대해산(1907) 이후 군인들의 참여로 전술 변화 : 강화진위대, 혁신유생, 포수 출신 등
- 13도 연합의병부대 결성(1907, 이인영/허위)
- (일제의 경제침탈이 가장 집중되었던) 호남지역이 가장 치열
- 장성 기삼연/고광순(1907), 전해산/심남일/안규홍(1908)
- 일본은 호남지역을 봉쇄, 남한대토벌작전(1909) : 의병장103명, 의병4138명 체포/학살

4. 헌정 수용과 사회진화론

1) 헌정 수용
- 대일본제국헌법 반포(1899), 중국 신해혁명 약식헌법(1911),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약헌(1919)
- 한성순보, 서유견문 등을 통해 서구의 헌정이 소개
- 개화파의 헌정 : 민의 참정권을 제한한 입헌군주제, 우민관
- 계몽 지식인 : 량치차오(양계초,梁啓超)의 사회진화론/국가론의 영향 받아 입헌군주제, 블룬칠리의 국가유기체설 수용, 민중을 불신(1905 이후)
- 일정한 군주권 제한, 대의제에 근거한 입헌군주제를 지향, 국민주의 입헌공화제는 부정

2)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제국주의 인식
- 사회진화론 : 생존경쟁/유기체론/진화의 개념으로 구성
- 자유경쟁/우승열패를 진보의 동력으로 보아 서구 열강의 침략을 진보로 여김
- 약자에게는 현실순응과 패배주의를 안겨주고, 의병을 폭도라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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