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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이해

한능검, 공무원, 한국사 시험 대비 한국사의 이해 핵심요약정리 X.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근대변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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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근대변혁운동

1. 새로운 국제질서의 전개와 문호개방

1)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동아시아 3국
- 1차 아편전쟁(1840)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
-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중화적 질서가 해체, 만국공법에 기초한 조약, 세계자본주의에 강제 편입
- 미일화친조약(1854), 조선에 이양선 출몰
- 19세기 문호개방에 대한 동아시아 3국의 대응 :
중국 청(淸) - 중체서용(中體西用)에 기초한 양무운동(洋務運動)
일본 막부말기 - 화혼양재론(和魂洋才論)/메이지유신(1868)
조선 - 개항(1876)이후 북학론 계승,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2) 서구열강의 개방 압력과 대원군
- 고종(1863-1907)의 부친 흥선대원군 집권
- 쇄국정책 :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 병인양요(1866, 대프랑스), 신미양요(1871, 대미) 후 척화비 건립
- 내정개혁 :
비변사 폐지/의정부 부활, 남인/북인 등용, 서원철폐, 호포법, 사창제 개혁, 매점 금지
  서원 철폐/호포법 실시로 양반 반발, 경복궁 중건(원납전 징수/노동 징발)으로 양민 반발
봉건사회 모순의 해결보다 강력한 왕조국가 유지가 목적/한계

3) 개방
- 외교문서 문제(1868)로 외교 단절 상태
- 일본내 정한론(征韓論) 대두, 운요호 사건(1875)으로 무력시위/문호개방 강요
- 개항/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1876) : 최초 근대적조약/불평등조약 - 부산/인천/원산항 개항/거류지제공, 영사파견/재판권 인정, 자주관세권 포기, 치외법권 인정, 부록 - 무관세, 일본화폐사용

2. 개화파의 개혁운동과 조선사회의 변화

1) 고종의 개화정책과 균세(均勢)외교
- 근대문물 수용 본격 추진, 김홍집 조선책략 개화정책/균세정책 추진
- 척사파 유생의 반대
- 의정부 아래 통상/문물수용 담당기구 통리기무아문 설치(1881)
- 군사 : 2군영(무위영/장어영), 신식군대 교련병대(별기군, 호리모토 초빙 근대식 군사훈련)
- 선진 기술/지식/수교정보 확보(1881) : 조사시찰단 일본파견, 영선사 청에 파견
- 개화파/중인출신 지식인의 성장, 한성순보 간행
- 한미통상조약(1882, 관세자주권), 한영통상조약(1883, 관세자주권박탈, 최혜국대우(다른나라에게도 같은 수준의 이권을 주어야 한다)로 불평등조약)
- 프랑스/독일/러시아 수호통상조약 체결하여 열강세력 균형(均勢政策)을 이용한 부국강병 꾀함

2) 임오군란과 청의 간섭
- 임오군란(1882) : 홀대를 받아오던(급여미지급) 구식 군대의 반일투쟁 봉기, 민씨일파 공격/일본공사관 습격
- 청의 군대파견으로 진압, 이후 내정간섭 심화
- 대청 조선상민수륙무력장정(1882, 조선을 속국화), 대일 제물포조약/수호조규속약 체결
- 청일 텐진조약(조선에 파병시 사전 통지한다)

3) 갑신정변(1884)
- 개화정책에 대한 갈등 확대 : 온건개화파(척족중심 수구당)와 급진개화파(김옥균/박영효의 개화당)
- 개화당은 우정국 낙성식에서 민씨일파를 몰아내고 정권 장악, 14개조 정강 발표
- 대청 사대외교 폐지, 입헌군주제적 정치구조, 지조법 개정, 재정기관 일원화, 혜상공국 폐지, 자유로운 상업발전, 인민평등권, 능력에 따른 인재등용
- 청군의 공격으로 홍영식/박영교 사망, 김옥균/박영효/서재필 일본으로 망명, 3일 천하
- 일본의 침략 속셈을 간파하지 못한 부르주아혁명, 사회적 역량 부족, 민중의 요구 미수용

4) 개항이후 조선사회
- 전환국, 기기창, 육영공원, 전신/석유/전기
- 양화진, 서울의 시장 개방(1882)된 후 내륙시장까지 개방
- 청/일의 면제품 중계무역으로 국내 면포생산 농민들 몰락
- 식량/원료를 수출하고 자본제 상품을 수입하는 식민지무역과 같은 미면교환체제(米綿交換體制)로 변화

3. 농민전쟁과 갑오개혁

1) 동학의 교조신원운동과 고부(정읍)봉기
- 농민들의 반봉건 항쟁은 일회성에 그쳤으나, 동학으로 이념적/조직적 한계를 극복
-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1892) :
충청도 공주, 전라 삼례역에서 대규모 집회
  서울 광화문앞에서 상소운동(1893), 보은 장내리 집회 역시 실패
- 전라도 금구 원평 전봉준 집회

2) 농민전쟁
- 1차 농민전쟁(1894) :
전봉준/손화중/김개남 전라도 무장 봉기
백산에서 호남창의대장소를 조직, 태안/금구 원평에서 결집
정부 토벌대를 상대로 황토현/황룡촌 전투 승리후 전주성에 무혈 입성
청군과 일본군 상륙으로 인해, 농민군은 정부군과 전주화약 - 집강소 설치, 폐정개혁안 요구
일본군 경복궁 점령, 아산해전을 시작으로 청일전쟁 시작
집강소 설치와 폐정개혁 실시를 합의
일본은 평양전투에서 승리후 내정간섭 강화
- 2차 농민전쟁
농민군은 반침략 항일투쟁을 위해 대부대 조직
공주 전투, 우금치 전투
일반유생의 민보군과의 전투와 주요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종료
- 반봉건 근대화와 반침략 자주화를 통한 근대민족국가 수립을 지향한 변혁운동

3)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1차 갑오개혁 :
정부는 전주화약으로 교정청 설치(1894), 자주적 개혁 추진을 결정하였으나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 갑오정권을 세운뒤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 추진
일본은 궁내부(왕실의 정치개입 배제목적) 설치, 의정부를 내각제로 변경, 과거제 폐지, 신분차별 폐기, 재정기관 탁지아문으로 일원화, 은본위 화폐제도 실시, 도량형 통일
갑신정변의 정강, 농민군의 폐정개혁안을 반영한 근대적 개혁이었으나, 농민보다 지주입장을 옹호
- 청일전쟁의 전개 :
청일간 성환/평양 전투, 황해해전에서 일본군 연승
시모노세키조약(1895) - 전쟁 배상금, 뤼순/다롄/대만 할양, 조선은 청과의 조공체제에서 벗어남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대륙침략의 초석, 조선의 보호국화 추진, 제국주의국가
- 2차 갑오개혁 :
일본은 군국기무처 폐지, 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 구성, 고종으로 하여금 홍범14조 공포
- 삼국간섭 : 러시아/프랑스/독일은 일본에 전쟁전 환원을 요구 - 만주 동청철도 부설권, 뤼순/다롄 조차권 획득
- 일본공사 미우라, 명성왕후 민씨 살해(을미사변,1895), 김홍집을 수반으로 친일내각 수립, 단발령 시행
- 이에 봉건유생들이 의병을 조직, 반일/반개화운동(을미의병)
-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아관파천,1896), 친러파 인사의 새 내각을 구성, 갑오정권 숙청

4. 척사, 개화 그리고 동학

1) 척사사상과 반개화운동
- 척사사상 : 화이론과 북벌론을 바탕으로한 서양의 정치/경제적 침략위기에 대한 대응논리로 확대, 반개항/반개화운동을 뒷받침
- 병인양요때 이항노/기정진 주전론 주장, 최익현 왜양일체설 주장
- 양반 유생층 중심으로 척사운동 전개 - 을미의병으로 연결
- 반침략적 성격이었으나 봉건적 민족주의의 한계

2) 동도서기론과 급진개화론
- 개화사상 : 박규수/오경석/유홍기
- 동도서기론 :
김홍집/김윤식/신기선/어윤중 (온건개화파)
서양의 도덕과 기술은 분리, 조선에 이익되는 기술 수용 주장, 이후 광무개혁의 원칙(구본신참)으로 계승
- 급진개화론 :
김옥균/박영효/서광범 (급진개화파)
종교,사상까지 수용할것을 주장, 민씨정권 타도, 사대외교 종식, 자주독립 강조
- 부르주아적 개혁을 지향한 위로부터의 개혁운동이자, 열강의 침략성을 깨달을 수 없는 논리적 한계

3) 민중의 희망, 동학
- 경주지방 몰락양반 최제우 창시(1860)
- 천심즉인심, 오심즉여심 - 사람이 한울이라는 사상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강조
- 후천개벽론과 무위이화(無爲而化,자연적인 운수에따라 이루어진다)의 개인의 종교적 수양을 강조
- 반봉건적, 반침략적(보국안민) 성격
- 농민전쟁에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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