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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환경

방통대, 생물, 생명공학 등 생명과환경 핵심 요점 요약 정리 10. 환경문제의 역사적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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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환경문제의 역사적 전개

1. 서론

1) 경문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

.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자연 파괴로 인한 어려움과 비슷한 문제가 당시에도 존재

. 인류가 지구상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래 자연파괴는 계속 존재

- 대규모 삼림의 파괴로 인한 피해는 여러 지역에서 매우 큰 규모로 일어났음

- 그 결과로 한 문명이나 시대가 마감되는 일도 일어났지만 그 후에도 문명이 지속됨

-> 현재의 환경문제를 상대화하고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음

 

2) 우리가 역사를 통하여 얻어야 할 것

. 옛사람들의 국지적이기는 하지만 무절제한 자연이용이 그들에게 어떤 문화적결과를 가져 왔는가를 탐구함으로 현재 우리의 전 지구적인 환경파괴가 가져올 결과와 그 예방에 대한 시사점을 줌

- 서양 중세의 12, 13세기에 대대적으로 벌여졌던 삼림파괴14세기의 전 유럽에 걸친 흑사병의 전염과

인구의 격감을 낳았고 이것이 회복되는데 한 세기 이상이 걸림

 

2. 산업혁명 이전의 환경문제

1) 옛 시대나 현대의 환경문제 - 에너지 소비의 확대자원의 무절제한 낭비에서 옴

. 현재는 이 두 가지 범주가 상당히 비슷한 비중을 차지

. 19세기말까지 또는 20세기 초엽까지도 환경문제는 거의 에너지 흐름의 파괴나 확대의 결과 (*)

 

2) 에너지 흐름의 파괴나 확대의 예

. 농경 그것 자체로서 그리고 숲을 개간해서 농경지를 얻는 활동

. 곡물을 경작한다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 광합성을 하는 다른 식물이 흡수하여 변형한

태양에너지인간에게 유리한 작물로 인위적으로 이동하게 하는 것

. 숲을 개간하는 행위는 지구상에서 태양에너지를 집적하는 역할을 하는 나무를 없앰

 

3) 인간의 농경생활에 의해서 일어나는 환경문제 (*)

. 첫째는 관개농업을 할 경우 토양 염분의 증가로 인한 토양의 척박화 (**)

. 둘째는 농토와 농경사회의 필요한 나무를 조달 위해 숲의 파괴로 인한 에너지 자원의 고갈 (*)

. 셋째는 표토의 침식으로 인한 토양의 황폐화 (*)

 

3. 관개농업과 토양의 척박화

1) 관개농업으로 인한 토양의 황폐화

. 국지적으로는 현재도 일어나는 현상

- 강이나 호수의 물은 토양에서 녹아 나온 염분을 포함

- 이 물이 농토로 보내지면 수분은 작물에 흡수되거나 증발하지만 염분은 계속 토양 에 남음

- 비에 의해 염분이 씻겨 지기 때문에 염분의 농도가 심각할 정도로 높아지지 않음

- 농사가 전적으로 관개에만 의존할 경우에는 염분의 축적이 급속히 이루어짐 (*)

. 20세기의 옛 소련 아랄 해 부근의 광대한 농토

-> 여기에 물을 대기 위해 아랄해로 들어오는 강에서 많은 양의 물을 끌어 썻다 (*)

- 아무-다랴와 시르-다랴 강과 연결되는 관개수로 건설

- 거대한 양의 물로 면화, , 야채재배 -> 처음 십년간은 많은 소출을 내면서 번성

- 들어오는 강물이 크게 줄어든 아랄 해는 점점 말라감 -> 농토는 축적된 염분으로 척박해짐

.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

- 티그리스와 유프라데스 강의 물을 이용해서 대규모 관개농업

- 오랜 시간 동안 염분의 축적이 이루어짐

- 그 지역의 거대한 농토는 점차 소출이 줄어들어 식량부족현상이 일어나고 문명이 붕괴

- 이 지역은 버려지고 다른 지역이 개간되어 번성

- 대부분의 땅이 염분의 축적으로 인해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문명의 붕괴

- 현재 이라크에서도 농토의 염분 축척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이는 농사에 해가 되고 있다.

2) 현재도 인도, 중국, 옛 소련, 미국 등지에서는 대규모 관개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음

-> 이로 인한 염분의 축적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토가 늘어남

-> 인도에서는 700ha가 염분의 축적으로 버려짐

. 해마다 버려지는 농토의 면적은 관개를 해서 새로 생겨나는 농토의 면적보다 더 큼

 

4. 고대 그리스의 나무 부족과 숲의 파괴

1) 숲의 파괴는 이미 고대 그리스 때부터 커다란 문제로 부각

. 숲은 에너지 조달, 약탈농업, 각종 기구, 특히 선박건조에 의해서 크게 파괴

. 플라톤의 비유 : 아테네 주위가 병으로 상처가 심해서 이제는 뼈만 남은 것과 같다.”

-> 숲이 농지가 확대되면서 파괴 -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자 토양이 침식된 현상

-> 실제 그리스는 나무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민둥산으로 뒤덮여 있다.

 

2) 고대 그리스의 숲의 파괴 : 19C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인구증가와 농토의 확장으로 파괴

. 대규모 선단의 건조

-> 아테네가 지중해의 해군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군함대의 건조

-> 나무로 된 군선은 수명이 짧아 동맹국으로부터도 목재 수입

 

5. 고대 로마의 환경문제 (* 기출: 숲의 파괴, 납 오염, 소음문제)

1) 로마의 자연파괴도 그리스에 비해서 더 심각

(* 기출: 숲 파괴원인 : 금속의 채굴과 야금, 목욕탕의 땔나무 조달, 대규모 함대의 건조)

. 도시화가 더 대규모로 진행됨 -> 전쟁무기와 선박제조가 더 크게 일어남

. 평지의 숲은 농토 확장을 위해 상당부분 사라진 상태

-> 산지의 숲에서 나무가 수송됨 -> 사라진 산지는 농토를 더욱 확장시키는 결과

. 로마의 전쟁무기 제조를 위해서는 광산에서 구리와 철이 채굴되고 야금이 이루어짐

-> 나무는 갱도의 갱목뿐만 아니라 야금하는데 필수적인 연료목재로 사용

. 로마에서도 함대건조를 위해서 숲이 대규모로 파괴됨

. 목욕탕의 건설 -> 로마시민이 최소한 쾌적한 도시 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

-> 기원 후 4세기에 로마에는 11개의 호화 목욕탕과 856개의 작은 목욕탕

-> 나무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장작 수입

 

2) 로마의 대규모 나무 수요에 의한 환경파괴 (*)

. 이탈리아 반도뿐만 아니라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의 숲을 거의 황폐화하는 결과

. 시칠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그리스

- 숲이 사라지면서 지중해 지역의 기후와 식물도 점차 바뀌어 감

-> 겨울철 많은 비가 내려도 더 이상 숲의 나무와 부식토에 의해서 저장되지 않음

-> 여름에는 삼나무, 참나무, 백양나무 숲의 뜨거운 기운을 식히고 보정해 주는 작용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균기온이 점점 더 높아짐 (*)

-> 산간지역은 여름을 위한 물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없어 점점 더 많은 하천이 바닥을 드러내어

평지는 점차 황폐화됨

. 숲의 파괴지역은 영국과 프랑스 같은 다른 유럽지역으로 넓혀짐

. 로마의 이러한 반 생태적 정책멸망의 한 원인

 

3) 로마 인구의 도시집중에 기인한 환경문제

. 그릇과 수도관 생산에 납을 대량으로 사용으로 발생

. 납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납 증기 문제

- 당시 대규모 납과 은 광산이 있었던 스페인 야금할 때 방출되는 증기를 멀리 대기 중으로 흩날리기

위해 높은 굴뚝이 세워짐 -> 이로 인해 납이 섞인 공기는 북유럽까지 날아감 (*)

. 포도주나 물에 녹은 납이 인체에 축적

- 로마인 즐겨 마시던 음료는 포도주를 납 용기에 넣고 끓여서 만든 시럽 ->주로 귀족이 마심

->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납중독으로 인한 통풍에 걸림

. 로마의 인구밀집지역에서의 밤낮 구분 없는 소음 -> 소음의 피해는 서민

-> 좁은 도로에 달리는 짐차, 술주정뱅이, 옆집소음으로 밤새 시달려 서민의 건강 상함

. 로마 도시의 난방으로 인한 환경문제 심각.

 

5. 중세유럽의 숲 파괴로 인한 생태파탄

1) 로마의 멸망으로 숲의 파괴는 일단 멈춤

. 로마와 그리스의 숲은 복구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까지 파괴되었음

. 로마의 멸망으로 북유럽의 원시림은 보존

. 12세기 유럽에서 다시 숲의 파괴가 진행

-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농지개간에 의해서 일어남 -> 유럽의 인구는 2~3배로 증가

 

2) 인구증가의 원인 : 새로운 농업기술은 생산력을 증가시켰음

. 인구증가를 200년간 지속 -> 이를 위해 계속 숲이 개간되었고 매우 비옥 -> 곡물생산 크게 늘어났고

잉여량도 많아졌음 - > 인구는 더욱 늘어났고 수천 개의 새로운 마을이 생겼으며 더욱 넓은 숲이 파괴

 

3) 13, 14세기에 유럽의 번영

. 유럽 각 지역을 그물처럼 연결하여 분업화

- 동유럽 귀족들은 엘자스 지방의 포도주를 마시고 -> 영국 양모가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수출

-> 도스카나와 같은 큰 도시는 곡물을 동유럽에서 수입

. 이러한 번영과 더불어 사람들이 자연을 보는 관점도 달라짐

- 자연이 합리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음 -> 질서를 이해할 수 있으면 자연을 다룰 수 있다고 믿음

- 자기들의 번영이 숲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파괴한 대가로 얻어졌다고 생각지 않음

- 자연의 자원이 무한정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음

 

4) 14세기의 자연자원의 위기 - 나무의 고갈로 인한 것 (**)

. 당시의 나무는 우리시대의 석유와 같은 역할

- 가정이나 성채의 난방, 건축자재, 대장간의 연료로 사용

- 선박의 기초자재와 포도주통으로 사용 -> 유리 제조공장

. 중세 2세기 동안의 계속적인 번영은 바로 나무에 바탕을 둔 것

 

5) 14세기의 나무 부족으로 인한 파탄

. 사람들에 의해 짓밟히기만 했던 자연의 공격이 시작됨

- 이전의 기근은 국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14세기에 들어와서 기근은 일반적인 현상

- 2세기 이상에 걸친 약탈농업으로 13세기 말이 되면서 전반적으로 곡물수확이 줄어듦

- 기상이변이 몰아닥쳐 유럽 전역의 숲이 거의 파괴 된 상태에서 생태파탄은 피할 수 없게 됨

 

6) 기상이변

. 습하고 추운 날씨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수년 동안 계속됨

- 곡물비축량은 금방 바닥이 났고 곡물가격은 폭등

- 서민이 가장 큰 피해를 봄 -> 전반적인 굶주림에 처했고 영양실조에 걸림

. 페스트의 엄습

-> 저항력이 약해진 사람들이 희생됨 ->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페스트에 쓰러짐

-> 이로 인해 유럽 전역은 혼돈과 피폐 상태에서 150년 동안 신음

. 생태계는 인간 수를 줄임으로써 옛 상태를 서서히 회복함 (*페스트(흑사병) -생태계에 긍정적작용)

 

6. 이스터 섬의 생태파탄과 문명의 붕괴

1) 나무로 가득 찬 이스터섬

. 서기 500년경에 폴리네시아 인이 이주하여 숲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함

-> 남태평양 이스트 섬의 바다를 보고 서있는 거석을 세움 (*)

. 점차 불어난 인구에게 식량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더 넓은 숲이 개간됨

2) 이스터 섬 문명의 붕괴

. 1400년경 숲이 거의 사라져 버림 -> 한동안 약탈농업은 지속될 수 있었으나 소출이 줄어듦.

. 최후의 숲마저 파괴되었고 영양실조, 전염병 등으로 이스터 문명이 사라짐 (*)

 

7. 중국의 나무 부족과 숲의 파괴

1) 중국의 숲의 파괴 : 중국에서는 유럽에 비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석탄이 연료로 사용 (*8세기 시작)

. 750년경부터 1100 사이북부 중국에서는 화석연료 전례 없던 규모로 사용된 이유

- 인구증가로 인한 연료소비의 증가 -> 농업과 군사적 목적의 금속수요 증가

- 750년경에 가속화되었던 북부 중국 여러 지역의 벌채로 인한 나무 부족

. 10세기 송대 시작 무렵 철강생산업과 도시에서는 나무부족현상으로 계속

. 12세기 -> 북부중국의 야금산업이 쇠퇴, 목탄사용도 줄어 듬 -> 숲 자체는 이미 크게 파괴된 상태

 

2) 숲의 파괴로 인한 환경문제 : 황토 노출로 인한 환경문제(황사현상)

- 숲이 파괴된 후 논으로 바뀌었다면 황사현상 일어나지 않겠지만 모두 논으로 바뀐 것 아니다.

- 숲의 일부만 논으로 바뀜 -> 숲이 파괴된 언덕, 산의 황토가 건조한 시기에 황사현상 유발

- 현재 중국대륙에서 숲이 차지하는 면적이 12% (*)

 

3) 대규모 황사현상 : 1930년대에 미국 남부에서 일어난 황사현상

- 농경지의 무분별한 확대 결과 -> 미국의 텍사스, 오클라호마, 콜로라도 등지에서 수년간 계속

- 1800년대 초부터 남부 초원의 대대적인 개간

 

8. 근대유럽의 나무 부족 문제

1) 14세기에 유행한 페스트로 인구 격감 후 유럽의 숲 어느 정도 회복(*)

. 살아남은 사람 당시 얻은 교훈 거울삼아 숲을 조심스럽게 다룬 것도 기여 -> 200년 정도 지속

 

2) 16세기부터 다시 나무 부족현상이 일어남 : 16세기 후반의 남벌과 개간의 결과로 나타남

. 16세기 유명한 런던의 대기오염

- 나무 부족으로 인해 석탄이 연료로 도입된 결과

- 당시 런던에서는 석탄을 태웠을 때 나오는 매연에 관한 기록이 상당히 많았음

- 영국에석탄 이용에 바탕을 둔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

. 독일도 16세기 중엽의 상황이 영국과 비슷

- 독일의 나무 부족현상은 석탄이 나무를 대치하는 19세기 초까지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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